한일 슈퍼게임을 출전한뒤 을 선동렬은 일본 진풀을 선언했다. 해태에 입단하라며 갖은 극성을 떨고 항의했던 광주팬들도 그이 편을 들어줬다.해태구단은 여론조사까지 거쳐 선동렬의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입단을 허락했다. 선동렬은 일본에서 네시즌을 뛰며 10승4패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 기록했다.첫해에는 고전했지만 1997년~1998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와 센트럴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 자리를 다퉜다.
감독으로서..
은퇴하고 귀국한뒤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2005년 삼성감독을 맡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2006년에는 삼성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시리즈 제패에 성공했다. 감독으로 서 6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3회진출에 2회우승 통산 승률은 0.551이다 선동렬은 선수로도 지도자로도 빛났다.그래서 사람들을 그를 sun이라고 부른다.30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태양같은 존재가 있다면 바로 선동렬이다.
방어율 1점대의 전설 한국 최고의 언히터블 피쳐
토론토 블루 제이스는 1981년 한국 최고투수 최동원과 5년짜리 메이저리그 게약을 했지만 최동원의 입단을 성사 시키진 못했다.이듬해 한국을 찾은 토론토의 스카우터 담당이사였던 웨인 모건은 선동렬을 전성기의 최동원과비교하며 스피드에선 전혀 손색이 없지만 커브가 미완성이라고 평했다.최동원과 비견되는 강속구를 던졌을때 선동렬의 나이는 19세에 불과했다. 모건의 말대로 커브는 좋지않았다. 선천적으로 짧고 뭉툭한 손가락은 커브 구사에 불리 했다.선동렬이 프로에서 커브를 던진건 마무리로 전업한 뒤다. 하지만 이손가락은 선동렬의 슬라이더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전성기 선동렬은 직구와 슬라이더 두개의 구종만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했다. 투수의 목표는 점수를 주지않고 아웃을 잡는것이다.선동렬은 통산 1.647이닝을 던졌으며 통산 방어율은 1.20을 기록했다.6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1점대 방어율은 선동렬이 유일하다. 리그 평균 방어율플러스로 나눈 자책점은 304.9 선동렬이 평균적인 투수보다 세배는 뛰어났다는 의미다. 그는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언히터블 피처였다.통산 1할대 피안타율을 기록한 투수는 선동렬(0.173)이유일하다. 11시즌 동안 피홈런은 28개에 불과하다.선동렬의 피홈런은 다음날 스포츠 신문 1면에 실리는 대형 뉴스 감이었다.9이닝 당 삼진은 9.28로 구대성(9.74)에이어 2위다. 하지만 구대성이 183탈삼진으로 타이틀을따낸 1996년의 리그 평균 9이닝 당 탈삼진 은 5.9개였다.선동렬이 200탈삼진을 기록한 1998년엔 3.8개였다.게다가 구대성은 삼진을 잡기 유리한 마무리 투수로 주로 뛰었다. 컨트롤도 완벽했다 선동렬은 통산 9이닝 당 볼넷 1.87를 기록했다. 삼지/볼넷 비율은 4.97로 2위박충식을 아득하게 앞지른다. 다음 내용은 다음글에서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