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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레전드-한대화

1993년 시즌에 한대화의 나이는 33세 5번 타자로 개막전을 맞은 한대화는 타율 26613홈런 46타점에 그쳤다. 그 시기 해태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김성한도 하향세를 보인 반면 이종범 이호성 홍현우 등 새로운 강타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결국 그해 12월 1일 해태와 엘지는 대형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한대화와 신동수가 엘지로 가고 미스터 엘지 김상훈과 이병훈이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마지막 불꽃 서른네 살이면 당시 프로야구에서 환갑의 나이이다. 그러나 한대화는 역시 해결사였다. 엘지는 이해 창단 시즌인 1990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은 모두 15승 이상씩을 올렸고 마무리 김용수가 30세이브를 올리는 활약을 했다. 신인 3총사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은 최고..

카테고리 없음 2022.06.09

야구레전드-한대화

해태 선수 한대화의 데뷔 전은 1986년 4월 3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이경기에서 한대화는 8번 타자 3루수로 기용됐다. 프로셀 시즌 통산 타율 256의 3루수라면 8번 타순이 적당했다. 그러나 해태의 한대화는 달랐다. 한대화는 타율 5위 타점 2위 홈런 5위 잔 타율 2위 출루율 5위 를 기록하며 골든 글러브 3루수가 됐다. 승리 타점은 16개로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타점 2위 기록은 그가 하위타순에 주로 기용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이적이다. 해결사한대화 이때부터 해결사 한대화의 명성이 드디어 프로에서 다시 빛났다. 반면 ob가 한대화의 대안으로 영입했던 히로시마 카프 출신 재일 동포 박창언은 47경기에서 타율 245만 기록한 채 퇴단했다. 한대화가 끝내 트레이드를 거부했다면 그는 한국의 커트 플러드..

카테고리 없음 2022.06.07

야구레전드-한대화

어우홍 대표팀감독이 4번 장효조 다음에 등장하는 5번타자로 대학교 4학년생인 한대화를 중용한건 그의 힘을 믿었기때문이다.탄탄한 하체에 강한 허리힘으로 대학선수로는유일하게 국제용으로 인정받았다. 이대회에서 타격10위안에 이름을 올린 한국선수는 한대화가 유일했다. 동국대시절 한대화는 동국대 1학년 시절 1979년 4월 부산 시장기에서 타격왕을 기록하여 일찌감치 가능성을 보였다. 그해 춘계리그에선 3번 타자로 활약했다. 이듬해 한대화는 처음부터 원했던 ob 베어스에 입단한다. 서울 연고 선수 지명권이 있는 엠비시와 ob는 각각 지명 선수 명단을 한국야구위원회에 제출하고 중복 선수일 경우 mbc2ob1의 비율로 드래프트했다. 동국대 4번 타자이자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영웅 한대화는 ob 단독 지명 선수였다. 한대..

카테고리 없음 2022.06.05

야구레전드-한대화

한국의 야구의 3루수 레전드 한대화를 알아보자 경력사항 1983년 ob베어스 입단 1986년 해태타이거즈 입단 1993년 엘지트윈스 입단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입단 1998년 동국대 감독 2003년 삼성라이온즈타격코치 2004년 삼성라이온즈 수석 코치 2009년 한화이글스 감독 수상내역 198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8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8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올스타전 최우수 선수 1989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출루율1위 1990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타율1위 1991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9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9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한국 커트플러드에서 한국의 베이브루스로 야왕의 강렬한 선수생활 해결사 이 단어 만큼 한 대화를 잘 설명하는 ..

카테고리 없음 2022.06.03

야구레전드-양준혁

맞춤법 검사를 원하는 단어나 문장을 입력해 주세요 야구가 인생을 담은 경기라는 말은 페넌트레이스 제도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프로야구는 페넌트레이스 중에 매일 같이 경기가 열린다. 페넌트레이스는 승률 5할을 놈 나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싸움이다. 시즌 승률은 매일의 5할 승부 그 결과가 모여 결정된다. 그래서 야구는 하루하루 성공과 실패를 겪고 사는 생활인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사랑했던 스타의 멋진 은퇴식을 바라고 또 그런 은퇴식이 여운에 남는 건 그가 긴 세월 함께 공명했던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양준혁의 선수 마지막 양준혁은 2010년 9월 19일 정들었던 대구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그때가 양준혁이 은퇴하기에 적당한 시기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준혁은 마흔 살인 2009년 부상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22.06.01

야구레전드-양준혁

그의 통산 ops는. 950으로 10시즌 이상 뛴 선수 중 최고다. 9시즌으로 이하로는 후배 이승엽이 1.201로 크게 앞선다. 히지만 양준혁의 ops도 데뷔 뒤 9시즌까지 한정한다면 0.991이다. 양준혁은 통산 기록 부문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의 선수로 남아있게 될까. 기록을깰수있을것인가 양준혁은 개인 통산 2318안타를 쳤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이부문 2위는 당시 넥센 전준호이다. 양준혁과 프로야구에서 당시 유이한 2000안타 타자였다. 같은 성구회 멤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준호가 양준혁의 기록에 도전할 수는 없다 그도 2010년 이후로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친 타자는 이병규 정성훈 김태균 등등 있지만 장성호 선수가 당시 2010년 1799안타를 기록했다. 장성호는 15..

카테고리 없음 2022.05.30

야구레전드- 양준혁

2003년 부타 2007년까지 5시즌 동안 양준혁은 네 번 더 3할 타율을 기록했다. 2007년부터 6월 9일 잠실 두산전에서 양준혁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2000안타가 됐다. 그 이후의 양준혁은 기록의 사나이였다. 그가 출전한 경기 한 타석 홈런 하나가 프로야구의 새 기록이었다. 18년을 프로야구 선수로 뛰면서 양준혁이 남긴 기록은 찬란하다. 그는 자신을 늘 이인자로 부른다 그러나 2011년 현재 프로야구 통산 최다 출전 최다 타석 최다 타수 최다 안타 최다 2루타 최다 홈런 최다 루타 최다 득점 최다 타점 최다 4사사구 최다 4구 기록은 모두 양준혁의 것이다. 위대한 18시즌의 기억 앞으로도 최고로 남을 그의 이름 196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샌디 쿠펙스는 위대한 선수는 몇 년 반짝..

카테고리 없음 2022.05.29

야구레전드-양준혁

1999년 해태에서 개인 최다 홈런 기록을 다시 쓴 뒤 양준혁은 2000년 엘지로 입단했다. 김응룡 감독은 전해 양준혁이 입단했을 년 1년 뒤에 원하는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여기에 전해 구단은 재정난에 빠져있었고 강타선에 비해 마운드가 약했다. 2000년 3월 24일 해태는 엘지에 양준혁을 보내는 대신 투수 손혁과 현금 5억 원을 받는 트레이드를 했다. 햇수로 년 전의 양준혁처럼 손혁이 트레이드에 반발했고 결국을 시즌을 임의 탈퇴 선수로 야구장을 떠났다는 점은 선수 이적이 구단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프로야구 제도가 낳은 아이러니이다. 트레이드 2000년대의 첫 두해를 양준혁은 엘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첫해에는 타율 0.313에 15홈런이라는 양준혁 치고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하지만 2001..

카테고리 없음 2022.05.28

야구레전드-양준혁

1993년 한국 프로야구는 양준혁과 이종범의 시대를 연해이었다. 해태 유격수 이종범은 화련한 수비와 함께 도루 73개를 성공시키며 스타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이듬해부터 해태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인 1997년까지 4시즌 동안 이종범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오랫동안 재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신인 시절을 본다면 양준혁의 압승이었다. 양준혁의 전력질주 데뷔 전이던 4월 10일 대구 쌍방울 전에서 양준혁은 신인 3번 타자로 6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괴물의 탄생을 알렸다. 5월 31일 규정타석에 진입하자마자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세 부분 선두로 나섰다. 규정타석 진입이 늦은 이유는 당시 신분이 홈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는 방위였기 때문이다. 양준혁은 이해 1983년 장효조에 이어 두 번째인 신인 타격왕과 함께..

카테고리 없음 2022.05.26

야구레전드-양준혁

경력 사항 1993년 삼성라이온즈 입단 1999년 해태타이거즈 입단 2000년 엘지 트윈스 입단 2001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2011년 sbs 야구 해설위원 2011년 양준혁 야구재단 발족 수상 내역 1993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 타율 1위 출루율1위 장타율1위 1994년 타점 1위 199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타율 1위 안타 1위 장타율1위 199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199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타율 1위 안타 1위 2001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8번째 최다 수상 공동) 마지막 타석의 전력 질주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안..

카테고리 없음 2022.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