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야구레전드-김재박

동군영20 2022. 5. 21. 15:23

1979년 실업야구는 라이온스 리그와 타이거스 리그로 나뉘어 개인 시상을 했는데 김재박은 라이온스 리그 도루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김재박의 소속 팀은 성무로 바뀌어 있었다. 성무는 공군팀이다. 당시 꾼 팀들은 실업팀의 입대 적령기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외 거주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김재박에게도 그 무렵 다른 우수 선수들이 한 차례씩 경험했던 대로 일본 프로구단의 영입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군대 문제 때문에 외국 진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재박의 성무시절

군 팀에서 뛴다고 김재박의 실력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 1979년 5월에 열린 제29회 백호기 전국야구 대회에는 실업과 대학에서 각각 11개 팀씩 모두 22개 팀이 출전했고 8강에 실업과 대학이 각각 4개 팀씩 올라 백중세를 보였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공교롭게도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경리단과 성무가 맞붙었다. 성무는 정순명이 8안타 1실점으로 완투하고 김유동이 3점 홈런을 나려 4-1로 승리했다. 김재박은 타율 2위 등의 활약으로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1980년 실업야구 코리안 시리즈에서도 라이벌인 경리단과 성무가 맞붙었다. 경리단은 그해 투수 김현재와 외야수 김일권 정도가 제대했고 장효조와 김대진, 신원호 등이 입대해 전력이 탄탄해졌다. 그러나 성무는 계형철 내야수 천보성과 김정수 외야수 김유동 등이 코리안 시리즈 직전에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경기 도중 파울볼에 손가락이 골절돼 출전이 불가능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성무는 1차전 0-2,2차전 2-7로 일방적으로 밀렸다. 3차전에서 3-4로 뒤진 9회 말2사1.2루에서 김재박이 3루수 장태수의 글러브를 맞고 흐르는 좌익선상 2루타를 터트려 4-4 일몰 무승부를 만들었으나 성무의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성무는 4차전에서 이광은이 선발로 나서 타석에서는 홈런을 때리는 등 투타에서 활약하며 9회 초까지 6-1로 앞섰으나 9회 말 무려 6점을 내주며 1무 3패로 주저앉았다. 당시 경리단이 9회 말에 6점의 열세를 뒤집고 승리한 것은 실업야구 사상 9회 최다 점수 차 역전승이었다. 이에 앞서 그해 봉황대기 고교 야구 대회에서는 대구고가 서울고에 14-13으로 역전승할 때 9회 말에 6점을 얻었다. 이 경기는 많은 올드팬들이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경리단과 성무의 당시 선수 분포를 보면 꾼 팀들이 얼마나 우수 선수 확보에 힘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김재박은 그해 4월에 열린 제2회 부산 시장기 실업야구 대회에서는 경리단과 치른 결승에서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터트려 탐의 5-2승리를 이끄는 등 맹활약해 최우수 선수가 됐다.

 

 

국제대회김재박

새로운 10년이 열리는 1980년 김재박의 진가는 국제 대회에서 다시 한번 빛났다. 그해 8월 캐나다 에서 열린 제5회 대륙 간 컵에서 한국은 준결승에서 쿠바에 1-9로 긴데 이어 3위 결정전에서 도미니카 공화국한테 져서 4위에 그쳤다. 그러나 김재박은 출전 8개국이 풀리그를 벌여 상위 4개국에 준결승을 진출권을 주는 예선리그 호주전에서 홈런을 기록했고 특히 4강 진출의 최대 고비였던 캐나다전에서 최동원과 힘을 모아 1-0승리의 수훈 갑이 됐다. 최동원은 강호 쿠바를 2-1로 잡은 캐나다의 강타선을 상대로 8회 말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갔다. 9회 말 선두 타자에게 우전 안타를 내줘 아깝게 대기록을 놓치긴 했지만 빼어난 호투를 펼쳤고 김재박은 1회 초 희생플라이로 이경기의 결승점을 뽑았다. 이 대회에서 2승에 평균자책점 1.-32를 마크한 최동원은 최우수투수상을 받았고 김재박은 베스트 9에 뽑혔다. 캐나다에 연고를 둔 토론토 블루 제우스는 이 대화를 통해 최동원의 영입 작업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1981년 봄 서울 용산 미군 캠프에서 비밀리에 테스트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