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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레전드-양준혁

동군영20 2022. 5. 25. 20:15

경력 사항

 

1993년 삼성라이온즈 입단

1999년 해태타이거즈 입단

2000년 엘지 트윈스 입단

2001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2011년 sbs 야구 해설위원

2011년 양준혁 야구재단 발족

 

수상 내역

1993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 타율 1위 출루율1위 장타율1위 

1994년 타점 1위

199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타율 1위 안타 1위 장타율1위

199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199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타율 1위 안타 1위

2001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200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8번째 최다 수상 공동)

 

마지막 타석의 전력 질주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남기다.

2010년 7월 1일 대구구장 삼성과의 롯데의 경기였다. 6-6으로 맞선 9회 말 1 사 2루 8번 타자 진갑용 타석에서 롯데 벤치에선 고의사구 작전이 나왔다. 야구 응원의 불문율에 따라 대구구장 관중석에선 원정팀에 대한 거센 야유가 터져 나욌다. 야유는 곧 환호로 변했다. 3루 쪽 삼성 더그아웃에서 거구의 타자 한 명이 배트를 들고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양준혁이었다. 양준혁은 6월 18일 대전 한화전을 끝으로 선발로 뛰지 못하고 대타로만 출전했다. 하지만 대구 팬들에게 양준혁은 평범한 타자 이상의 의미였다. 스타는 관중을 환호시키는 법을 알았다. 그날 양준혁은 이정훈의 3구 시속 135킬로 싱커를 받아쳐 롯데 좌익수 손아섭 옆으로 떨어지는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공이 그라운드에 떨어지기도 전에 관중석은 환희로 들끓었고 삼성 더그아웃에선 후배들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달려왔다. 그리고 이 안타는 양준혁의 프로 통산 2.318반째 안타이자 마지막 안타이기도 했다. 양준혁은 그뒤 네차례더 대타로 타석에 나섰지만 안타를 치지 못했고 7월26일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7월1일 마지막 안타에는 또다른 특기사항 있다. 대다수 타자들은 끝내기안타를 치고 1루를 밟은뒤 동료들과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눈다.하지만 양준혁은 끝까지 다렸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안타는 단타가 아닌 2루타가 됐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질주하는 선수였다.

 

 

양준혁의 아마추어 시절

양준혁은 남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경운중 시절엔 주로 투수로 뛰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야수로 전향했다. 경운중 3학년이던 1984년엔 체육부 정관기에서 1루수로 타격상 을 받으며 미래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대구상고 시절엔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고교 3학년이던 1987년엔 삼성 입단을 희망했지만 박영길 감독의 만류 당시 감독의 만류로 대학 진학을 택했다. 당시에는 연고지 선수 세명을 차게 명으로 뽑을 수 있었으며

2차지명은 무제한이었다. 그리고 고졸 선수가 드물었다. 당시 삼성은 1차 지명에서 모두 6명을 뽑았는데 이들은 모두 대학 1생 선수였다. 삼성은 쟁쟁한 야수가 즐비한 팀이었으며 유망주가 뛸 2군 리그도 없었다. 영남대에 진학한 양준혁은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988년 제43회 대학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11타수 5안타로 타격상을 따냈고 이듬해엔 제1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봄철 리그에선 12타석 연속 출루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