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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레전드-장종훈

첫홈런왕 이해 장종훈은 타율은 0.241로 떨어졌다. 지나치게 큰 것을 노리고 변화구에 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힘 있는 스윙은 이후 장종훈이 가야 할 길이었다. 타율은 떨어졌지만 장타율은 0.409에서 0.427로 오히려 상승했다. 1989년 장종훈은 황대현과 유격수 경쟁을 하느라 301타수에만 들어섰지만 18홈런을 때려냈다. 홈런 버디에서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타수당 홈런으로 따지면 이해 홈런왕 김성한이 19.7장종훈이 16.7 이었다 홈런왕 장종훈의 탄생은 이제 목전으로 다가왔다. 1990년 김영덕 빙그레 감독은 4년 차 장종훈에게 4번 타자 중임을 맡긴다. 시즌 초반에는 하위타순에도 가끔 기용했다. 부담을 느끼지 말라는 배려였다. 하지만 장종훈은 부담을 뛰어넘었다. 이 헤 장..

카테고리 없음 2022.05.14

야구레전드-장종훈

쉽지않은 프로입단 우승 주역들이 졸업한 뒤 세광고는 야구의 변방으로 물러났다. 장종훈은 세광고의 4번 타자로 뛰었지만 어느 스카우터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이다. 1986년 2차 지명은 지금과 달리 무제한으로 선수를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국 대회 4강에 한 번도 들지 못한 세광고 3학년생들은 누구도 부름을 알지 못했다. 전국 대회 4강 실적이 있는 선수가 우선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제도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이해 한 희미니, 곽영진, 오덕환 등 세광고 출신들이 지명을 받기는 했지만 이들은 모두 대학이나 실업야구 소속이었다. 대학야구에서도 부르는 팀이 없었다. 순탄치않은 프로생활 편법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한 이가 있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5.13

야구레전드-장종훈

1루수 장종훈 경력사항 1987년 빙그레 이글스 입단 1993년 한화이글스 입단 2001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부회장 2006년 한화이글스 2군 타격코치 2008년 한화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1년 한화이글스 2군 타격코치 수상내역 198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90년 홈런1위,타점1위,장타율1위,득점1위,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1991년 한국프로야구mvp ,득점1위,홈런1위,타점1위,장타율1위,득점1위 1992년 홈런1위,타점1위,장타율1위,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한국프로야구mvp 1995년 한국 프로야구 골든글러브,장타율 1위,출루율1위 땀방울로 타구를 날린 프로야구가 만든 홈런타자 연습생출신 스타가 되다 오늘날의 메이저리그는 베이비 루스라는 이름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루스가 블랙삭스 ..

카테고리 없음 2022.05.11

야구레전드-이만수

mvp수상 mvp 수상은 1983년이 유일하다. 이듬해 이만수는 타격 3관왕에 오르고도 27승의 최동원은 넘기지 못했다. 당시엔 에이스 투수가 20승을 흔한 일로 여겨지는 시대이다 보니 최초의 타격 3관왕이 화제였다. 롯데 이대호가 이만수의 뒤를 이어 타격 3관왕에 오른 건 22년이 지난 2006년의 일이었다. 이만수는 1985년에도 홈런 타점 타이틀을 거머쥐며 mvp에 도전 했지만 해태 김성한에게 왕좌를 내줘야 했다. 같은 팀의 장효조와 김시진이 함께 후보에 오르는 바람에 표가 분산이 되었다. 심성은 그해 전기 후기리그 통합 우승을 이루고도 mvp를 배출하지 못하는 불운을 맛봤다. 은퇴한 뒤지만 한국야구위원회가 프로야구 30번째 시즌을 맞아 야구인과 취재기자 팬들을 상대로 실시한 프로야구 30년 레전드..

카테고리 없음 2022.05.10

야구레전드-이만수

미국생활 1998년 미국 프로야구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산하 애크런 에로스로 코치 연수를 떠나 1999년 사카고 화이트삭스의 트리플 a 팀인 샤롯트 나이츠의 객원 코치로 지냈으며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팀의 불펜코치를 했다, 2006년 11월 sk와이번스 코칭스태프로 합류했으며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따라 1군 감독대행을 맡았다. 한국최초의 타격3관왕 이만수는 전설적인 선수로 기록되는이유 이만수는 198년 타격 3관왕에 오르며 구단으로부터 3년 연속 연봉 인상 상한선 25퍼센트를 보장받았다. 어지간한 선수 같으면 대충 경기를 했을지도 모른ㄴ다. fa 대형 계약을 한 선수가 이른바 먹튀가 되는일이 종종 벌어지는 이유다. 1980..

카테고리 없음 2022.05.09

야구레전드 이만수

타격왕 밀어주기 1984년 후기리그 막판 타율 1위 싸움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만수가 3할 4푼으로 시즌 타율을 확정한 가운데 삼성과 롯데의 마지막 2연전이 9월 22일과 23일 부산 구덕 구장에서 벌어졌다. 시즌 막판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이만수를 따라붙은 롯데 재일 동포 선수 홍문종은 2연전을 앞두고 3할 3푼 9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만수와 1리 차이였다. 예상대로 삼성은 홍문종에게 첫 타석부터 칠기회를 주지 않았다. 홍문종은 5차례나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튿날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도 홍문종은 4차례 볼넷으로 걸어나가 9연속 타석 고의 4구라는 달갑지 않은 진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든 이들이 짐작하듯 이만수를 타격 3관왕으로 만들기 위한 삼성 사령탑의 결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규 시즌..

카테고리 없음 2022.05.08

야구레전드-이만수3

국가대표 1979년 6월 미국 그랜드래피츠에서 열린 한미 대학야구선수대회에서한국은 5승 1패로 우승을 했고 최우수 선수로 이만수가 선정되었다. 당시 대학선발 멤버는 김시진, 김용남, 박철순, 양상문, 임호균, 선우 대영, 박태종, 이만수, 김진우, 정학수, 오대석, 정영기, 양세종, 김종윤, 우경하, 박용성, 박종훈 등 훗날 프로야구를 빛낼 선수들이었다. 1980년 도쿄 세게 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국 대표팀은 2월 가고시마에서 야구 사상 처음으로 국외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이만수도 선배들과 함께 선수 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외국에 가서 훈련을 했다. 태릉 선수촌에도 들어갔다. 이제는 구단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트레이닝 룸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때만 해도 야구선수들은 웨이트트레이닝이니 서킷 훈련이니 하는..

카테고리 없음 2022.05.07

야구 레전드 이만수-2

아마추어시절 중학교 1학년을 두 번 다녔다. 그래서 동갑인 김시진이 대구상고, 한양대 1년 선배가 되었다. 이만수는 각고의 노력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했지만 팔에 무리가 가서 대구상고로 진학한 뒤 포지션을 포수로 바꿨다. 이때 결정이 레전드 포수 이만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1977년 6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32회 청룡기 고교 야구선수권대회는 강타자 이만수의 탄생을 알린 대회였다. 패자 부활전에서 살아 올라간 대구상고는 동산고와 겨룬 결승 1차전에서 이만수의 역전 결승타로 3-1로 이긴데 이어 2차전에서는 박영진과 이만수가 투타에서 활약해 7-2로 승리해 1970년 대회 이후 7년 만에 다시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대회 최우수 선수상으로 뽑힌 이만수는 타율 최다안타 타점 등 4관왕에 올랐다. 훗..

카테고리 없음 2022.05.06

야구레전드-이만수

경력사항 -1982년 삼성라이온입단 -1997년 삼성라이온즈은퇴 -1998년 애크론애로스 타격 훈련담당쾨 -1999년 시카고화이트삭스 코치 -2006년 sk와이번스 수석코치 -2010년 sk와이번스 2군 감독대행 -2011년 sk와이번스감독대행 수상내역 1983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정규시즌 mvp,홈런1위,타점1위 198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홈런1위,타점1위 타율1위 장타율1위(프로야구 첫 타자3관왕) 1985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홈런1위,타점1위 198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1987년 한국프로야구 골든 글러브 ,타점1위,장타율1위 2002년 한국프로야구위원회 프로야구20년통산 포지션 별 최고스타 포수부문 수상 영원한 삼성맨 메이저리그를 향한 도전 그리고sk 와이번스의 사령탑으..

카테고리 없음 2022.05.05

야구레전드 선동렬-5

포스트 시즌 불운과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우승 1986년 ~1989년 해태는 4년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네번의 시리즈에서 에이스 선동렬은 2승1패3세이브에 그쳤다.가을만되면 몸이 좋지않고 승운도따르지 않았다.해태 가을야구의 주인공은 가을까치 김정수였다.선동렬 자신도 김정수가 부러울때가 있었다고 회상한적이있다.1990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선 그가 등판 두경기에서 해태가 모두 졌다.정규시즌 190과3분1이닝 동안 홈런 하나 만을 내줬지만 플레이오프에선 김용국과 김용철에게 역전 동점 홈런을 맞았다. 참담한가을이었다.하지만 선동렬에게 가을야구에서의 부진은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다.1991년 한국시리즈에선 선발 두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팀의 여섯번째 우승 주역이 됐다. 1993년 한국시리즈 그가 최고..

카테고리 없음 2022.05.04